전쟁이 끌어올린 지상 전투 로봇, 금기에서 실전 전력으로
우크라이나·러시아 드론전이 촉발한 무인 지상체계 전환
한때 윤리 논쟁 탓에 공개적으로 다루기 조심스러웠던 전투 로봇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계기로 실질적인 전투 수단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특히 병력 손실을 줄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지상 전투 로봇은 향후 전장의 판도를 바꿀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쓸 것인가”에서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로
전투 로봇을 둘러싼 논의의 초점은 그동안 “기계에 살상 판단을 맡겨도 되는가”라는 윤리적 물음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같은 윤리적 쟁점보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많은 물량을 조달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화두로 바뀌었다. 러시아와 교전 중인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소형 공격·자폭용 드론을 수백만 대 단위로 구매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는 전투 로봇이 소수의 특수 장비가 아니라, 탄약처럼 대량으로 소모되는 보급품 취급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현재도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있다. 공중에서는 소형 자폭 드론이 보병과 장갑차, 보급 차량, 진지를 노리는 저비용 정밀타격 수단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초기에는 최전방이나 후방 보급로 정도에 그쳤던 공격 범위도 이제는 수백km 떨어진 산업 시설까지 넓어졌다. 우크라이나는 장거리 자폭 드론으로 러시아 후방의 공군기지, 정유시설 등을 타격하고 있고, 러시아 역시 샤헤드 계열 자폭 드론으로 우크라이나 전력망과 산업시설을 반복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바다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해상 무인정(USV)은 상대적으로 열세인 우크라이나 해군력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부상했다. 소형·고속·장거리 공격이 가능한 무인정은 군함뿐 아니라 항만, 교량, 연료 인프라까지 노리고 있다. 2024년 우크라이나는 자폭용 무인정으로 러시아 상륙함과 순찰함을 공격해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한 바 있다. 드론과 무인정이 기존 무기 체계 못지않은 실효성을 입증하고, 전쟁 장기화로 병력 손실과 충원 문제가 심화하면서, 지상에서도 전투 로봇 도입이 본격화할 조건이 갖춰지고 있다는 평가다.
전투보다 보급·후송에 방점 찍힌 현재의 지상 로봇
지상 전투 로봇은 보병이나 장갑차량을 대체하기 위한 무기라기보다, 드론 위협이 극심한 전선에서 인간 병사 대신 위험 구간을 통과해 임무를 수행하는 소모성 원격 장비로 자리 잡고 있다. 소형 자폭 드론이 후방 수십km까지 위협하면서, 단순한 보급이나 후송 활동조차 매우 위험한 임무가 됐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가 싸우느냐”보다 “누가 위험 구간을 통과하느냐”가 병력 손실을 좌우하는 변수로 떠올랐다.
현재 지상 전투 로봇의 주된 임무는 화력전보다는 군수품 보급, 부상자 후송, 폭약 운반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일부 전선에서는 전방 보급의 상당 부분이 지상 로봇을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실제 부상병 후송 사례도 보도된 바 있다. 지상 로봇은 단독으로 움직이기보다 드론과 함께 공중-지상 공조 체계로 운용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중형 정찰 드론이 표적 탐지와 좌표화, 통신 중계를 맡고 소형 자폭 드론이 정밀 타격을 수행하는 동안, 지상 로봇은 군수품 운반, 폭약 전달, 지뢰 부설과 제거를 담당하는 식이다. 다만 적진을 실제로 점령하는 임무는 여전히 인간 병사의 몫으로 남아 있어, 임무 수행 범위에는 아직 뚜렷한 한계가 있다. 지상 로봇이 진지를 공격하거나 포로를 통제한 사례가 일부 보고되긴 했지만, 이는 여전히 상징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관건은 ‘얼마나 강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끊기지 않는가’
현재 운용되는 지상 전투 로봇 대부분은 완전 자율이 아니라, 영상과 통신 링크를 통해 조종사가 이동과 사격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이 때문에 가장 중요한 기술적 과제 중 하나로 통신 회복력이 꼽힌다. 원격조종 특성상 차폐물이나 전파 방해, 지형 조건에 취약해 작전 반경이 크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전술적 성공 여부는 차체 성능보다, 전파 방해 상황에서도 조종이 끊기지 않는지에 좌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차체 형태부터 임무까지, 다양해지는 지상 로봇
지상 전투 로봇은 구조에 따라 소형 차륜형, 중형 궤도형, 사족보행형 등으로 나뉜다. 소형 차륜형은 저렴하고 빠르게 생산할 수 있으며 은밀성이 뛰어나 근거리 보급과 정찰에 적합하지만, 진흙이나 파편, 경사지에는 약하다. 중형 궤도형은 적재량과 험지 돌파력, 다목적 수행 능력에서 강점을 보이는 대신 비용이 높고 적에게 쉽게 발각된다는 단점이 있다. 사족보행형은 참호나 계단 같은 복잡한 지형에 강하지만, 적재량이 적고 배터리 특성상 운용 시간이 짧다는 한계가 있다. 현재 주류를 이루는 형태는 단순 차륜형·궤도형이다.
임무별로는 군수·보급형, 의무후송형, 자폭·폭약전달형, 무장 전투형, 공병형, 다목적형 등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현재 비중이 가장 큰 것은 의무·군수형이며, 대중적으로 ‘전투 로봇’ 하면 떠올리는 무장 전투형은 실제 사용 사례가 있긴 하지만 아직 개발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는 평가다.
전장 실전 배치, 우크라이나가 가장 앞서
지상 전투 로봇을 실전에서 가장 폭넓게 운용하는 국가는 단연 우크라이나다. 구조와 임무 면에서 가장 다양한 형태의 로봇을 실전에 투입하고 있다. 대표적인 다목적 지상 로봇으로는 현지 스타트업이 개발한 ‘오디세이’가 꼽힌다. 궤도와 차륜을 함께 갖춘 구조로, 화물 적재함과 원격무장, 폭약 모듈을 상황에 맞게 교체 장착할 수 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조립에 나흘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는 현장 개조와 낮은 생산 단가를 앞세운 전시 현지생산 모델의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자폭·폭약전달형 로봇 중에서는 ‘라텔S’가 잘 알려져 있다. 전기식 4륜 무인차량으로 약 40kg급 탑재물을 목표 지점까지 운반한 뒤 자폭하는 방식이며, 저비용·소모성 설계가 강점이지만 험지 통과성과 통신 지속성은 대형 궤도형에 비해 떨어진다. 이보다 탑재량이 큰 자폭형 로봇도 등장했는데, 약 200kg의 폭약을 싣고 20km를 이동해 건물을 폭파한 사례가 보도되기도 했다. 폭탄 탑재 중량만 놓고 보면 지상 로봇이 중소형 드론의 성능을 웃도는 수단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무장 전투형으로는 현지 기업이 만든 두 기종이 자주 거론된다. 그중 하나는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을 탑재해 조종사가 수km 떨어진 후방에서 원격 조종하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지속적인 공격 행위를 위해서는 탄약 재장전과 정비를 위한 인력 접근이 필수적이어서, 실질적으로 장기간 독립적인 작전 수행은 어렵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서방이 개발해 우크라이나에 실전 투입된 사례로는 에스토니아산 궤도형 무인차량 ‘THeMIS’가 대표적이다. 운송, 공격, 지뢰 제거 장비 등 다양한 모듈을 교체 장착할 수 있는 다목적 로봇으로, 탑재량과 내구성, 표준화 측면에서는 다소 우위를 보이지만 조달 비용과 전장에서의 수리 용이성 면에서는 우크라이나산 로봇들에 비해 불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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